시키고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
가게의 간판처럼 불이 켜져 있는 교통표지판을 보았다.
대낮에 왜 …
나무가 우거진 사거리다.
나무가 우거져 하루 종일 그늘진 곳.
그 곳에 하루 종일 불이 들어오는 표지판을 달았다.
나무가 표지판을 가리면 나무를 잘라야하는 줄 알았다.
방법은 여러가지다.
어느 쪽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가…
건축… 어디를 향해야하는가…
사람의 수명은 교묘하게 제한되어 있다.
세상을 이해하기 불가능한 짦은 시간만이 주어진다.
속도 제한이 걸려있는 자동차와 비슷하다.
더 오래 산다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까?
물론 각종 매체를 통해 사람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일생동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장 살아야되는 몇 십년의 인생에 매진하기에 바쁘다.
하루살이와 무엇이 다를까…
결국엔 아무도 넘을 수 없는 지식의 벽, 경험의 벽 속에
인류는 갇혀 있는지 모른다.
왜 모듈인가?
면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공간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주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모듈은 유지되기 힘들다.
지극히 상대적이고 암흑 속의 작은 촛불과 같다.
나는 모듈 속에서 길을 잃는다.
여기가 알고 있는 그곳이 아닐 수 있다.
모듈 속 정보는 모듈 속에서만 유효하다.
축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집안의 화분 하나, 하나, 하나…
출입구 하나, 하나, 하나…
내방의 창문 하나, 하나, 하나…
다양한 입체적 영역들 사이에서
경계의 접점은 좌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점들은 어느쪽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또다른 독립적인 모듈이 된다.
The taste of Big Mac was same to the taste in Korea. Were we enjoying sandwiches by any forcing? We might be spontaneously.
Actually, in America, the things we cannot accept exist more than the things we can. The reason why we can enjoy their things is that these also fit for us. And enjoying Big Mac, Hollywood movies and things like that means that we are sharing just a small part of their culture.
Culture can be shared but not forced. Understand differences. And appeal to similarities.
빅맥의 맛은 똑같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해서 우리는 햄버거를 즐기고 있는가?
아마도 자연스럽게 였을 것이다.
실제 미국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그들의 것들은 우리에게도 맞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햄버거를 좋아하고 헐리우드 영화에 매료되는 것은
미국 문화의 전부가 아닌 극히 일부를 공유하는 것일뿐이다.
문화는 공유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의 공통점에 호소해야한다.
소음을 인해 들을 수 없는 시간들
시야를 방해 받아 볼 수 없는 시간들
…
방해요소들을 인식하는 것이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디자인의 목표는 좀 더 깊이 있을 필요가 있다.
체계을 구축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요소를 하나로 묶어서
원하는 목적를 달성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건축은 그 속의 작은 부분이다.
좀 더 크게 생각하고 좀 더 멀리 보자.
들을 수 있지만 듣지 못하는 것이 더 많고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들…
이것들을 우리는 고민으로 알아낸다.
감각적이 되기보단 한번 더 고민하고
순응하기 보단 한번 더 의심한다.
느낄 수 있다.
감각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갈 수 없는 곳에 가보지 않고도
빛이 없는 곳을 보지 않고도
현재가 아닌 시간을 겪어보지 않고도
우리는 이것들을 인지해왔다.
진화를 거듭하며 갖추게 된 가장 특징적인 능력.
이것이 우리의 할일이 무엇임을 증명해준다.